고영희김씨네/집사생활

고양이의 신호와 집사의 반성.

백화집사 2021. 5. 30. 10:00

얼마 전, 우리 고영희김씨네에는 작은, 아니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늦은 밤, 눈앞에 있던 단비가 갑자기 귀 뒤를 뒷발로 긁기 시작했다. 

' 퍽! 퍽! 퍽!...... '

소리가 이상했다. 멀리서 봐도 귀 뒤의 붉은 빛이 한눈에 들어왔고,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급하게 단비의 귀 뒤를 확인했는데...... 역시나. 강한 긁음으로 털은 빠지고 피는 흥건했다. 재빨리 피를 닦아내고, 사진을 찍고, 24시간 병원으로 출발했다. 출발 전, 아내와 대화를 하던 도중, 나는 기존에 완치된 링웜의 연장선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 안쪽의 문제를 언급했고, 동물병원에서의 상담에서도 그간에 있었던 여러 상황을 전달했다.

결과는 귀 안쪽의 외이염이었다. 상처의 처치와 소독, 외이염의 처치 등을 받고, 담당 수의사분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 길.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뒷발로 피가 날 때까지 긁었다. 다행히 눈 앞이였기에 상처가 더 커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발신자는 있는데 수신자가 없다.

 단비는 얼마 전부터 조금씩 머리를 바닥에 비비는 모습을 보였다. 고양이는 집사에게 애교를 부릴 때 머리를 살짝 낮추고 몸을 바닥에 비비는 행동을 한다. 실제로 단비가 자주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귀가 안 좋을 때 하는 행동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머리를 숙인다기보다는 실제로 귀를 바닥으로 내려 문지르는 느낌이랄까? 외이도의 염증으로 인해, 귀가 가렵기에 하는 행동이고, 뒷발로 심하게 긁은 문제도 결국 같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묘하게 애매한 부분이라 구분하기 어렵지만, 사실 의심하려면 의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의심을 하지 않고, '그냥 넘겼기에 결국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하는 자책과 반성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분명히 그중에서 '나 귀가 불편해요.' 라는 말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의심이라는 가장 좋은 방패'에이~ 괜찮겠지.'란 방심과 귀찮다는 이유로 내려놓지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다시 넥카라 신세. 얼마 전, 링웜 완치 판정으로 넥카라를 벗었지만, 결국 잠시 더 신세를 지게 되었다.

반성, 반성... 그리고 다짐.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반려동물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나 아파요.' 라고. 생태계 피라미드 중간에 속하는 고양이에겐 상위 포식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것이 익숙한 본능이다. 그 때문에 유독 더 자신이 아픈 걸 숨기려 하는 동물이 고양이다. 그래서일까? 항상 집사들은 늦는다. 이건 변명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또 늦더라는 후회이자 반성이다. 그래서 제발 들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놓치지 않기를......

집사의 역사는 반성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일로 필자의 역사에도 또 한 줄의 반성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다음엔 놓치지 않는다.'는 다짐의 한 줄도 함께 써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