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정보/시작하는집사들에게

수의사는 신이 아니다.

백화집사 2021. 4. 19. 10:00

우리 고양이의 컨디션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잘 먹지도 않고 토하거나, 어느 날은 설사하기도 한다. 피부병은 아닌 것 같은데, 탈모가 있다. 정신없이 고양이와 함께 방문한 동물 병원. 

'이 고양이는 지금 이것이 문제입니다!'라는 속 시원한 진단을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원인보다는 조금 불확실한 예상과 현재 상황을 벗어나는 정도의 처방. 거기에 '경과를 지켜보죠.'라는 말까지 들으니 속이 답답해지기까지 한다. 담당 수의사의 실력 의심부터 병원 자체에 대한 신뢰까지, 돌아오는 발걸음 위에 생각만 많아진다. 

동물 병원에서 긴장 중인 두 녀석.

사람에겐 당연한 이야기?

 우리는 아프면 의사와 상담을 한다. 인류 의학의 발전은 눈부시기에 어지간한 병명은 몇 가지 검사를 거치면 명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그에 맞는 진료로 이어지고, 환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어느 정도 기간 후면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는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이건 결코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 의학 자체의 발전 만으로 이 당연한 이야기는 이뤄질 수 없다. 보험과 같은 의료 서비스 전반의 시스템화가 이뤄졌기에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주사 맞을 걸 아는지 루이는 아주 긴장 중이다.

수의사는 신이 아니다. 

 하지만 동물 병원은 다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부분도 많고, 특히나 보험 같은 경우는 완전 초기 단계이기에 실질적인 보호자의 부담이 높다.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된다고 해도, 마음껏 검사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의 체력은 좋지 못하다. 사람조차도 여러 검사를 통하면 지치고 힘든데, 하물며 아파서 체력이 떨어져 있는 고양이에게 할 수 있는 검사란 그렇게 많지 않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최첨단 검사들은 수의사에겐 최고의 무기들이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의사들은 그 무기들을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되며, 결국 경험이나 공유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조금 넓은 범위의 처방을 진행하고, 이후의 경과를 보면서 그 범위를 좁힌다.

- 필자는 수의사라는 직종을 두둔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사와 수의사는 고양이를 케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두 포지션이기에 집사는 수의사라는 직종을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가끔이지만 루이가 이렇게 병원에서 여유로운 날도 존재한다.

진정한 의미의 수의사는 집사다.

 그런 의미에서 집사는 수의사만큼이나 그 역할이 중요해진다. 처방 이후의 경과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수의사와 상담하여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실질적인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집사가 얼마나 잘 관찰 내용을 전달하냐에 따라, 수의사는 조금 더 디테일하고 안전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다는 걸 꼭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