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김씨네/집사생활

이게 사람 집인가? 고양이 집인가?

백화집사 2021. 3. 12. 10:00

'이게 사람 집이야? 고양이 집이야?'

 고양이 집사의 집을 누군가가 방문하면 꼭 한 번 듣는 말이 아닌가 싶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갖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꿈꾸던 집의 모양은 저 멀리 희미한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남에게 저렇게 한마디 들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마음속 나 자신에게 한 소리 듣는 순간, 흔히 말하는 현타가 정말 세게 온다. 

이미 점령 당했다! 근데 조앙~♡

집사, 캔따개, 고양이의 하인 등...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을 부르는 명칭은 나라마다 참 다양하다. 대부분 상전을 모시고 사는 어느 노예나 하인으로 호칭되고 있는데, 그만큼 고양이를 지극정성으로 케어하기 때문에 붙여진 재미있는 호칭이다. 사실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집사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지 고양이를 모시고 살고 싶진 않기 때문인데, 그런데도 남이 봤을 때는 여지없이 집사 노릇을 하고 있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 집에 사람은 없고 고양이를 위한 모든 것이 갖춰지고 있다. 사람과 고양이 모두를 위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싶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제품은 너무 가격이 무섭고, 적당한 제품을 찾자니 생각보다 고양이에게 그다지 좋은 제품이 아닌 경우가 많다. 결국 내가 불편하더라도 고양이가 편하면 좋은, 그런 제품을 선택하다 보면 고양이 집으로 변모해 가는 나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TV도 빼앗겼다. 야! 너만 보냐!?

누가 시작한 밸런스 게임인가.

 필자도 가끔 현타가 세게 오는 순간이 있다. 분명 집사가 건강해야 그 고양이도 건강할 수 있다. 이제는 그만 고양이에게 맞추고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고양이는 나에게 이걸 사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이렇게 집을 꾸며달라고 한 적도 없다. 고양이에게 좋은 환경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집사인 내가 꾸미기 시작했고, 따지고 보니 모두 내가 하나하나 선택했다. 애초에 고양이에게는 선택권조차 없었다. 

너만 봐라~ 저 눈을 보고 어떻게 채널을 돌려!?! ㅠ0ㅠ♥

결국, 이 밸런스 게임은 '나' '집사'인 내가 하고 있었을 뿐, 고양이는 딱히 관여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비싼 거 사달란 적도 없다. 오히려 싼 걸 더 좋아하고 잘 쓰기도 한다. 밥만 먹어도 괜찮은데, 굳이 귀찮게 와서 꾸역꾸역 영양제를 들이민다. 집.사.만.족. 딱 4자로 정리되는 이야기였다. 승자 없는 밸런스 게임.

하다못해, 커튼 하나에도 너희가 있다.

요즘 필자가 고양이에게 맞추는 기준은 단순하다. 내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 한도를 정한다. 어쩌면 이 현타는 내가 집사로서 잘해오고 있다는 것에 관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냥이들과의 지난 사진들을 찾아본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다 보면 우리 집 인테리어 어느 하나 추억이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추억이 묻어 있는 인테리어. 사람 집이면 어떻고 고양이 집이면 어떨까? '우리가 사는 집'이라는 게 중요하지.